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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爲政-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by TheEasyLife 2023. 5. 12.

<위정爲政> 2-11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것을 때때로 익혀서 새로운 이치를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
()은 찾고 연역(演繹)하는 것이다. ()는 예전에 들은 것이고, ()은 지금에 새로 터득한 것이다.
*
배움에 있어 예전에 들은 것을 때때로 익히면서 매양 새로 터득함이 있으면 배운 것이 나에게 있어서 그 응용이 끝이 없다. 그러므로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문(記問)의 학문으로 말하면 마음에 터득함이 없어서 아는 것이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예기(禮記)의 학기(學記)>기문(記問)의 배움은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였으니, 바로 이 뜻과 발명된다.

(
해설1)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스승이라면 '선지先知'는 기본이요, '선각先覺'은 더더욱 필수 불가결합니다. 공자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스승의 핵심 조건과 자질로 꼽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른바 '온고이지신'이라는 한마디는 배움學과 가르침敎에 대한 공자의 근원적 인식과 통찰의 표현이요, 결정結晶입니다. 무릇 구학求學, 즉 배움의 추구는 다름 아닌 바로 '온고' '지신'의 과정이요, 또한 그런 과정이어야 합니다. '온고'는 곧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1-1), 즉 배우고 또 그것을 수시로 익힘으로, 일차적으로 외부로부터 뭔가를 배워 익히는, 가장 기본적인 배움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지신'은 바로 '온고'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뭔가를 스스로 깨달아 앎으로, 보다 심층적이고 창의적이며 발전적인 배움의 단계입니다. 여기서 ''는 물론 반드시 '자구自求', 즉 스스로 추구하여 '깨달아 아는 것'이요, ''은 또한 반드시 '자득自得', 즉 스스로 터득한 '새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지식이나 이치, 그리고 그것을 탐구하고 터득하는 방법까지 결코 사전에 다른 누구로부터 배우지도, 또 스스로 알지도 못했던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배우는 과정은 단지 '온고'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지신'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고'에서 '지신'으로 도약 발전해가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창의적인 사고와 사유'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쉬이 배운 지식에 얽매이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해 위험하다."(2-15) 이는 공자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학이사지學而思之', 즉 열심히 배우면서 또 그 배운 것을 깊이 음미하고 '생각하는 공부'를 해야 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공자가 일찍이 또 '거일반삼擧一反三'의 논리로 배우는 이의 이해력과 연상聯想 및 창의적 사고력을 중시하고 강조한 것도 물론 같은 맥락의 가르침입니다.


<위정爲政> 2-12

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처럼(특정한 기능과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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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각각 그 용도에 적합하여 서로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 성덕(成德, 완성된 덕)한 선비는 체()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므로 용()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니, 다만 한 재주, 한 기예(技藝)가 될 뿐만이 아니다.

(
해설) 《예기》<학기>편에 이르기를 "'대도'는 그릇처럼 특정한 용도에 국한되지 않는다[大道不器]"라고 했습니다. 무릇 성인군자라면 인생의 '대도'를 궁구하며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정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군자는 정형적(定型的) 인물일 수 없으며, 진실로 학식이 높고 도량이 넓어 무소불통(無所不通, 통하지 않는 바가 없음)의 통재(通才), 대인(大人)이며, 또한 그런 인격자여야 합니다. 공자 교육 사상의 궁극적 지향은 결국 '불기(不器')의 군자를 배양하는 것입니다.
한편 날로 분업화, 전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는 '군자불기'의 의의가 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주자가 이른 대로 "높은 덕성을 이룬 선비는 인성의 본체를 갖추지 않은 바가 없으며, 그러므로 그 작용이 두루 미치지 않는 바가 없으며, 결코 단지 한 가지 재능과 한 가지 기예에 한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공자가 강조한 군자의 형상은 특정한 상황에 한정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체 국면을 두루 꿰뚫어 가장 적절히 대처할 줄 아는 영도적 인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렇다면 그 의의는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문득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아해 집니다.


<위정爲政> 2-13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

자공문군자. 자왈: "선행기언, 이후종지."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군자는 자신이 말한 것을 실행하고, 그 뒤에 (말이 행동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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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씨(周氏, 周孚先)가 말하였다. “선행기언(先行其言)은 말하기 전에 실행하는 것이요, 이후종지(而後從之)는 이미 실행한 뒤에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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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씨(范氏, 范朝禹)가 말하였다. 자공(子貢)의 병통은 말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요 실행함이 어려웠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말씀해 주신 것이다.

(
해설) 세상사,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칫하면 식언(食言)하기 십상입니다. 사람이 말보다 행동을 앞세워야 함은 그 때문입니다. '언행일치'가 우리의 영원한 화두인 까닭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더욱이 군자라면 '중행신언(重行愼言, 하기를 중시하고 말하기를 신중히 함)'하고 '선행후언(先行後言, 행동을 먼저하고 말을 나중에 함)'해야 합니다.
증자가 말했습니다. "(공자께서는) ()을 들으면 반드시 몸소 실행하고,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을 이끄니, 이는 선생님께서 능히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聞善, 必躬行之, 然後導之, 是夫子之能勞也."(《공자가어孔子家語》<육본六本>) 이를 보면 공자는 몸소 선행후언을 실천하며 솔선수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그 같은 취지를 거듭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함에는 민첩하고 근면하나, 말을 함에는 삼가고 조심한다."(1-14) "옛날에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행동이 그에 따르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4-22) "군자는 말을 신중히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고 한다."(4-24) "사람이 큰소리를 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 말을 실천하기는 어렵다."(14-21) "군자는 자신이 하는 말이 그 행동 범위를 넘어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14-28) 또한 《예기》<치의>편에서도 말했습니다. "말을 한 후에 반드시 그대로 실행하면 그 말을 꾸밀 수가 없고, 행동을 할 후에 반드시 그대로 말하면 그 행동을 꾸밀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함으로써 그 성신(誠信)함을 이룬다. (言從而行之, 則言不可飾也; 行從而言之, 則行不可飾也. 故君子寡言而行, 以成其信.") 공자가 사람들에게 중행신언을 권면함이 참으로 간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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