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行, 073 劉公見賓客, 談論踰時, 體無攲側, 肩背竦直, 身不少動, 至手足, 亦不移.
선행, 073 유공견빈객, 담논유시, 체무기측, 견배송직, 신불소동, 지수족, 역불이
선행, 073 바른 자세를 잃지 않은 유공 (송명신언행록)
유공이 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몸을 옆으로 기대지 않았으며 손과 발마저 움직이지 않았다.
善行, 074 徐積仲車初從安定胡先生學. 潛心力行, 不復仕進, 其學以至誠爲本, 事母至孝. 自言, 初見安定先生, 退頭容少偏. 安定忽厲聲云, 頭容直, 某因自思, 不獨頭容直. 心亦要直也. 自此不敢有邪心. 卒諡節孝先生.
선행, 074 서적중차초종안정호선생학. 잠심력행, 불복사진, 기학이지성위본, 사모지효. 자언, 초견안정선생, 퇴두용소편. 안정홀려성운, 두용직, 모인자사, 불독두용직. 심역요직야. 자차불감유사심. 졸시절효선생.
선행, 074 지성을 근본으로 한 절효선생 (송명신언행록)
서적의 자는 중거로 처음에 안정선생에게서 배웠다. 그는 학문에 마음을 기울이고 실천하는 데 힘써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학문은 지성을 근본으로 삼았으며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그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처음 안정선생을 뵙고 물러나올 때 머리가 조금 기울어졌다. 그러자, 안정선생이 갑자기 머리는 바르게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말을 듣고 ‘머리만 바르게 할 것이 아니라 마음도 바르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때부터 사악한 마름을 감히 가질 수가 없었다.”
죽은 뒤에 시호를 절효선생이라고 했다.
善行, 075 文中子之服儉以絜, 無長物焉. 綺羅錦繡不入于室, 曰, 君子非黃白不御. 婦人則有靑碧.
선행, 075 문중자지복검이혈, 무장물언. 기라금수불입우실, 왈, 군자비황백불어. 부인칙유청벽
善行, 075 검소함과 깨끗함을 즐겼던 문중자 (중설. ‘사군편’)
문중자는 검소하면서도 깨끗한 옷을 입었다. 게다가 여벌의 옷이 없었다. 무늬가 화려한 비단이나 수를 놓은 비단은 집에 들이지 않았다.
그는 “군자는 황색과 백색이 아니면 입지 않고 부인은 푸른색과 청록색 옷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善行, 076 柳玭曰, 高侍郞兄弟三人, 俱居淸列, 非速客, 不二羹胾, 夕食齕蔔匏而已.
선행, 076 유빈왈, 고시랑형제삼인, 구거청렬, 비속객, 불이갱자, 석식흘복포이이
선행, 076 청백리 고씨 삼형제 (유빈가훈)
고시랑 형제 세 분은 모두 깨끗하고 좋은 벼슬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손님을 초청한 경우가 아니면 고깃국과 고기 산적을 같이 먹지 안았으며, 저녁식사에는 무우와 박만 먹을 뿐이었다.
善行, 077 李文靖公治居第於封丘門外, 廳事前僅容旋馬. 或言, 其太隘, 公笑曰, 居第當傳子孫. 此爲宰輔廳事誠隘, 爲太祝奉禮廳事, 則已寬矣.
선행, 077 이문정공치거제어봉구문외, 청사전근용선마. 혹언, 기태애, 공소왈, 거제당전자손. 차위재보청사성애, 위태축봉예청사, 칙이관의
선행, 077 자식도 재상이 되는가. (송명신언행록)
문정공 이항은 봉구문 밖에 살 집을 지었는데, 대청 앞 뜰이 겨우 말 한 마리 돌릴만한 정도였다. 어떤 사람이 너무 좁다고 말하자 공은 웃으면서 말헀다.
“집은 마땅히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집은 재상의 청사로 쓰기에는 진실로 좁다고 할 수 있지만 태축이나 봉래 같은 낮은 관직의 청사로 쓰기에는 너무 넓다.”
善行, 077 李文靖公治居第於封丘門外, 廳事前僅容旋馬. 或言, 其太隘, 公笑曰, 居第當傳子孫. 此爲宰輔廳事誠隘, 爲太祝奉禮廳事, 則已寬矣.
선행, 077 이문정공치거제어봉구문외, 청사전근용선마. 혹언, 기태애, 공소왈, 거제당전자손. 차위재보청사성애, 위태축봉예청사, 칙이관의
선행, 077 자식도 재상이 되는가. (송명신언행록)
문정공 이항은 봉구문 밖에 살 집을 지었는데, 대청 앞 뜰이 겨우 말 한 마리 돌릴만한 정도였다. 어떤 사람이 너무 좁다고 말하자 공은 웃으면서 말헀다.
“집은 마땅히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집은 재상의 청사로 쓰기에는 진실로 좁다고 할 수 있지만 태축이나 봉래 같은 낮은 관직의 청사로 쓰기에는 너무 넓다.”
善行, 078 張文節公爲相, 自奉如河陽掌書記時. 所親故規之曰, 今公受俸不少, 而自奉若此. 雖自信淸約, 外人頗有公孫布被之譏. 公宜少從衆. 公嘆曰, 吾今日之俸, 雖擧家錦衣玉食, 何患不能. 顧人之常情, 由儉入奢易, 由奢入儉難. 吾今日之俸, 豈能常有, 身豈能常存. 一旦異於今日, 家人習奢已久. 不能頓儉, 必至失所. 豈若吾居位去位身存身亡如一日乎.
선행, 078 장문절공위상, 자봉여하양장서기시. 소친고규지왈, 금공수봉불소, 이자봉약차. 수자신청약, 외인파유공손포피지기. 공의소종중. 공탄왈, 오금일지봉, 수거가금의옥식, 하환불능. 고인지상정, 유검입사이, 유사입검난. 오금일지봉, 기능상유, 신기능상존. 일단이어금일, 가인습사이구. 불능돈검, 필지실소. 기약오거위거위신존신망여일일호.
선행, 078 부귀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온공가범)
문절공 장지백은 재상이 됐지만 여전히 하양의 장서기로 있을 때처럼 생활했다. 친한 친구가 그에게 충고를 하며 말했다.
“지금 공은 적지 않은 봉록을 받는데도 이처럼 검소하게 생활합니다. 비록 스스로는 청렴하고 검소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세상 사람들은 공손홍이 삼베 이불을 덮은 것과 같다는 비난을 할 것입니다. 공도 조금은 여러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자 문절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의 내 봉급이면 온 집안 식구들이 비단옷을 입고 쌀밥을 먹어도 근심할 것이 없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검소하게 살다가 사치스러워지기는 쉽지만, 사치하게 살다가 검소해 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항상 지금 수준의 봉급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 몸이 어떻게 영원히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하루 아침에 오늘과 달라지는 날에는 사치에 젖은 식구들이 갑자기 검소한 생활을 할 수가 없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내가 벼슬자리에 있거나 떠나거나, 몸이 살아 있거나 죽거나 상관없이 한결 같은 하루 하루여야만 할 것이다.
善行, 079 溫公曰, 先公爲群牧判官, 客至, 未嘗不置酒. 或三行, 或五行, 不過七行, 酒沽於市, 果止梨栗棗柿. 肴止脯醢菜羹. 器用甆漆. 當時士大夫皆然. 人不相非也. 會數而禮勤, 物薄而情厚. 近日士大夫家, 酒非內法, 果非遠方珍異, 食非多品, 器皿非滿案, 不敢會賓友, 常數日營聚, 然後敢發書. 苟或不然, 人爭非之, 以爲鄙吝. 故不隨俗奢靡者鮮矣. 嗟乎, 風俗頹弊如是. 居位者, 雖不能禁, 忍助之乎.
선행, 079 온공왈, 선공위군목판관, 객지, 미상불치주. 혹삼행, 혹오행, 불과칠행, 주고어시, 과지이율조시. 효지포해채갱. 기용자칠. 당시사대부개연. 인불상비야. 회수이례근, 물박이정후. 근일사대부가, 주비내법, 과비원방진이, 식비다품, 기명비만안, 불감회빈우, 상수일영취, 연후감발서. 구혹불연, 인쟁비지, 이위비린. 고불수속사미자선의. 차호, 풍속퇴폐여시. 거위자, 수불능금, 인조지호.
선행, 079 옛날과 오늘날의 술자리 (온공가범)
선친이 군목판관으로 계실 때 손님이 오면 늘 술자리를 마련하셨다. 어떤 때는 세 순배, 어떤 때는 다섯 순배를 돌려 술을 마셨지만 일곱 순배까지는 넘지 않으셨다. 술은 시장에서 사왔고 과일은 배, 밤, 대추, 감 뿐이었고 안주는 단지 포와 젓갈, 나물국 뿐이었다. 게다가 그릇은 사기 그릇과 옻칠한 나무그릇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사대부 들도 모두 그렇게 했으므로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지 않았다. 모임은 자주 있었지만 예를 부지런히 실천 했으며 물건은 소박했지만 정이 두터웠다. 하지만 요즘의 사대부는 집안은 궁궐에서 빚는 방법으로 만든 술이 아니면 안되고 과일은 먼 지방에서 가져온 진기하고 특이한 것이어야만 한다. 음식도 여러 가지가 아니면 안되고 그릇이 상에 비좁을 정도가 아니면 감히 손님과 친구를 부르지 못한다. 항상 몇 날 며칠을 술과 음식을 마련한 다음에야 초청하는 글을 보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투어 더럽고 인색하다고 비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의 풍속을 따라 사치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아아! 풍속이 이처럼 타락했다!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막지는 못할 망정 조장해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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