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學而> 1-1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또 그것을 수시로(때때로, 항상)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어찌 군자가 아니하겠는가?"
* 학(學)이란 말은 본받는다는 뜻이다.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善= 羊 + 䒑 + 口)하나, 이것을 깨닫는 데에는 선후(先後)가 있으니, 뒤에 깨닫는 자(後覺者)는 반드시 먼저 깨달은 자(先覺者)가 하는 바를 본받아 선(善)을 본받아야 선을 밝게 알아서 그 본초(本初)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 습(習)은 새가 자주 나는 것이니 배우기를 그치지 않음을 마치 새 새끼가 자주 나는 것 같이 한다는 것이다.
* 열(說, 悅)은 기뻐한다는 뜻이다. 이미 배우고 또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배운 것이 익숙해져서 中心에 희열(喜悅)을 느껴 그 진전이 저절로 그만 둘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정자(程子, 伊川)가 말하였다. 습(習)은 중습(重習, 거듭함)이니, 때로 생각하고 연역(演繹, 풀어내다)해서 가슴속에 흡족하게 젖어’들면 기뻐진다.”
또 말씀하셨다. 배우는 것은 장차 그것을 행하려고 해서이니, 때로 익힌다면 배운 것은 나에게 있기 때문에 기뻐지는 것이다.
* 사씨(謝氏, 謝良佐)가 말하였다. 시습(時習)이란 때마다 익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앉아 있을 적에 시동(尸童)과 같이 함은 앉아 있을 때의 익힘이요, 서 있을 적에 제계(齊戒, 엄숙하고 경계함)할 때와 같이 함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
* 붕(朋)은 동류(同類, 同志)이니 먼 지방으로부터 온다면 가까운 자들이 (찾아옴을) 알 수 있다.
* 정자(程子, 伊川)가 말씀하셨다. ‘善을 남에게 미쳐서 믿고 따르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또 말씀하셨다. “열(說 = 悅)은 마음 속에 있고, 낙(樂)은 발산함을 위주’하니 외면에 있는 것이다.”
* 온(慍)은 노여움을 품은 뜻이다. ‘군자(君子)’는 德을 완성한 자의 명칭이다.
* 윤씨(尹氏, 尹焞)가 말하였다. 학문(學問)은 자신에게 달려 있고,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은 남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서운해할 것이 있겠는가.”
* 정자(程子, 伊川)가 말하였다. “비록 善을 남에게 미치는 것을 즐거워하나, 남에게 옳게 여김을 받지 못하더라도 서운함이 없어야 비로서 이른바 君子라는 것이다.
* 내(朱子)가 생각’하건대 “남에게 미쳐서 즐거운 것은 인정(人情)에 순(順)한 것이어서 쉽고, 알아주지 않는데도 서운해 하지 않는 것은 인정(人情)에 반(反)하는 것이어서 어렵다. 그러므로 오직 덕(德)을 이룬 군자만이 능한 것이다. 그러나 덕(德)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또한 배우기를 올바르게 하고 익히기를 익숙히 하고, 기뻐하기를 깊이 하여 그치지 않음에 말미암을 뿐이다.
* 정자(程子, 伊川)가 말씀하셨다. 락(樂)은 열(說, 悅)을 말미암은 뒤’에야 얻어지는 것이니 락(樂)이 아니면 군자라 말 할 수 없다.
(해설1) 사람이 보다 사람다운,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워야 합니다. 공자는 일생 동안 사람들에게 호학好學, 즉 배우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는데,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한 《논어》 맨 첫머리에 곧바로 이상적 배움의 전형典型과 그 궁극적 지향을 제시하고 설명한 공자의 가르침을 배열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해설2) 이른바 '배우고 또 그것을 수시로 익히는 것'은 배움의 기본 방법입니다. 배움이란 주자朱子가 이른 대로, 우선은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새가 어미 새를 본받아 날고 또 날듯이 배운 것을 수시로 익히고 또 익힘으로써 '자기화自己化'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도리와 이치를 깨달아 쉼 없이 향상과 발전을 추구해가는 것이 곧 배움’이니, 그 기쁨은 진정 당사자만이 아는 내심의 희열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는 벗이 멀리서 찾아와 함께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정진하는 것은, 스승이나 학우도 없이 홀로 배움으로써 자칫 초래될 편협함’에 빠지지 않고, 개방과 융통의 미덕을 갖추게 해주는 배움의 또 다른 방법이요, 즐거움입니다. 멀리 사는 벗이 찾아 왔음은 그 열정과 절실함을 족히 말해주거니와, 가까이 사는 벗들은 더욱 자주 즐겨 찾아옴을 아울러 암시합니다. 배움에 목말라 찾아오는 벗이 때로는 제자일 수도 있으며, 그러면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서로 성장과 발전을 돕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효과와 즐거움까지 향유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선진先進>편에서 "민자건은 공자를 곁에서 모실 때 온화하고 기쁜 모습이었고, 자로는 굳세고 용맹한 모습이었으며, 염유와 자공은 강직한 모습이었다. 이에 공자께서는 매우 즐거워하셨다("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冉有, 子貢, 侃侃如也. 子樂. (先進 11-13) 라고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증자가 "군자는 학문과 문예로 벗을 사귀고"_(君子以文會友, 안연顔淵 12-24) 라고 했는데, 그 역시 공자의 이런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해설3) 공자가 말하는 배움은 실용적 지식이나 기능의 습득보다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품성이나 덕행의 수양을 우선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은 곧 배움의 태도이자 수양修養입니다. 공자가 <헌문憲問>편에서 "옛날에 배우는 이들은 스스로 내실을 다지기 위해 공부하였거늘, 오늘날 배우는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공부한다'_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14-25) 라고 했듯이, 배움은 결국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도덕적 수양과 학문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성낼 일이 아닙니다. 그저 배우는 기쁨과 즐거움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배움의 궁극적 지향이어야 하는 군자의 풍모이자 경지입니다. 《중용》에서 "설사 세상을 피해 은둔하여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그렇게 할 수가 있다_豚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라 한 것도 그 말이요, 《논어》에서 공자가 거듭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공자가 주창한 교육 사상의 지향과 목표는 군자의 덕목을 갖춘 인재 배양입니다. 이른바 군자는 '인'의 덕성을 함양한 사람이니, 공자는 배움을 통해 결국 구인求人, 즉 '인'의 도덕을 추구하고 체득해야 함을 역설한 것입니다. 공자 스스로도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_吾十有五而志于學(2-4)고 했는데, 이는 곧 인도仁道에 뜻을 둔 배움이자 군자를 목표로 한 배움을 두고 한 말입니다. 또한 필시 《예기》<학기學記>편에서 이른대로,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_人不學, 不知道"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논어》는 공자 사후에 스승의 귀중한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수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에서, 공문의 제자들이 함께 논의해 편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논어》첫 편 머리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로 시작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로 마무리하는 성인 공자의 숭고한 교육 사상의 기본 이론을 설파한 가르침을 배치했으니, 스승의 철학 사상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고 할 만합니다.
사람에게 있어 배움이라는 행위와 노력이 얼마나 중차대한 의의와 가치가 있는지, 우리 모두가 바르게 알고, 또 가슴 깊이 새기고, 온 심력을 다해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학이學而> 1-2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유자왈: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란자, 미지유야.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유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을 공경하면서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무니,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서 난(亂)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 않다. 군자는 근본(根本)을 힘쓴다. 근본이 확립되면 (인의)도가 생겨나니, 효와 제(孝悌,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을 공경하는 것)는 아마도 그것이 인(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 유자(有子)는 공자의 弟子이니, 이름은 약(若)이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孝’라 하고, 말함. 형과 어른을 잘 섬기는 것을 제(弟, 悌)라 한다.
* 범상(犯上)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범함을 말함. 선(鮮)은 적음이다.
* 작란(作亂)은 패역(悖逆, 도리에 어그러져 패악하고 불순함)하고 다투고 싸우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능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하면 그 마음이 화순(和順)해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적으니, 반드시 난(亂)을 일으키기를 좋아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 무(務)는 힘을 전일(專一 오로지 한곳을 집중함)하게 씀, 본(本)은 근(根)과 같다.
* 인(仁)은 사랑의 원리(原理)이고 마음의 덕(德)이다.
* 위인(爲仁)은 행인(行仁, 仁을 행함)과 같다.
* 여(與)는 의심하는 말이니 겸손하여 감히 단언하지 못한 것이다.
* 군자는 모든 일에 오로지 그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그 도(道)가 저절로 생겨난다. 윗글에서 말한바 ‘효제’는 바로 이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니, 배우는 자들이 이것(孝悌)를 힘쓰면 仁의 道가 이로부터 생겨남을 말한 것이다.
* 정자(程子, 伊川)가 말씀하셨다. “효제(孝弟)는 순한 德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어찌 다시 상리(常理)를 거스르고 어지럽히는 일이 있겠는가! 德은 근본이 있으니, 근본이 확립되면 그 道가 충만하고 커진다. 孝와 弟가 집안에 행해진 뒤에 仁과 愛가 남에게 미치니, 이것이 이른바 ‘찬한 이(친척)를 친히 하고서 백송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仁을 행할 때에는 孝弟를 근본으로 삼고, 本性을 논할 때에는 仁을 孝弟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혹자가 “孝弟가 仁의 根本이 된다 하였으니, 이것은 孝弟로 말미암아 仁을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나(伊川)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아니다. 仁을 행함이 孝弟로부터 시작됨을 말한 것이다. 孝弟는 仁의 한 가지 일이니, <孝弟가> 仁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이른다면 괜찮지만, 이것이 仁의 근본이라고 이른다면 불가하다. 仁은 체(體, 本性)이고 孝弟는 用이다. 성(性)가운데에는 다만 仁, 義, 禮, 智 네 가지만 있으니, 어찌 일찍이 孝弟가 있겠는가? 그러나 仁은 사랑을 주장하고, 사랑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孝弟는 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해설1)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본은 바로 효제(孝悌)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을 공경하는 이는 인애(仁愛)의 마음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인륜을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하게 할 리는 만무합니다. 그러니 효제가 인류 사회에서 영원히 강조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공자와 유자의 시대에도 이미 인륜이 파괴되고 풍속이 문란해져 심지어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제(子弟)가 부형(父兄)을 죽이는 극단적 패륜 현상까지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유자는 그런 사회를 치유하는 근본 대책이 바로 '효제'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효제’란 본디 가정 생활상의 도덕규범’입니다. 하지만 가정이 광대한 사회의 핵을 이루는 기본 단위이듯이, 효제 또한 사회를 유지하는 도덕규범’의 근본이라고 유자는 설명합니다.
(해설2) 윗사람에게 못되게 구느냐 어떠냐는 곧 그 사람의 효제(孝悌) 여부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현명한 임금들은 효제의 도로써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들은 "임금이 노인을 공경하면 백성들이 모두 제도(悌道)를 행하게 된다_(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대학》)고 생각해, 효제를 사람됨의 귀감으로 높임으로써 봉건사회의 통치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사랑의 원리요, 마음의 덕'으로 풀이되는 인도(仁道)를 근간으로 하는, 이른바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대학》)의 사상도 유가의 교육 이상과 통치 이념으로서 그 근본 맥락은 같습니다. 또한 맹자가 "사람들은, 도란 본디 가까운 곳에 있거늘 애써 먼 곳에서 찾고, 일이란 본디 쉬운 것이거늘 애써 어렵게 하도다. 요컨대 사람마다 각기 부모를 친애하고 어른을 공경하면, 천하가 절로 태평해질 것이다_(道在爾, 而求諸遠; 事在易, 而求之難. 人人親其親, 長其長, 而天下平"(《맹자》<이루상離婁上>)라고 한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학이學而> 1-3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듣기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은 인(仁)한사람이 드물다.”
* 교(巧)는 아름다움이다. 영(令)은 잘함(좋게 함)이다.
* 그 말을 아름답게(듣기 좋게) 하고 그 얼굴빛을 좋게 하여 외면에 꾸미기를 지극히 해서 남을 기쁘게 하기를 힘쓴다면 인욕(人慾)이 멋대로 펴져서 본심(本心)의 덕이 없어질 것이다. 공자님(聖人)은 말씀이 박절하지 않아서 오로지 적다고만 말씀하셨으니, 그렇다면 인(仁)한 자가 절대로 없음을 알 수 있다.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정자(程子, 伊川)가 말하였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 仁이 아님을 안다면 仁을 알 것이다.
(해설1) 사람들 가운데에는 간혹 "그 말을 듣기 좋게 하고, 그 얼굴빛을 보기 좋게 함으로써 외양(外樣)을 한껏 꾸며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힘쓰는_(好其言, 善其色, 致飾於外, 務以悅人"(《집주》)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습관적인 교언영색으로 남의 환심을 사거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대개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인(仁)한 사람은 말이 진실되고, 태도가 신실합니다. 하지만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에게 그런 인의 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공자는 교언영색과 같은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언행의 폐해와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경각심을 가져야 함을 일깨웠습니다. 주자가 이른’대로, 공자가 여기서 '드물다(鮮)'고 한 것은 단지 성인(聖人)의 박절하지 않은 말투일 뿐이며, 결국 교언영색하는 사람은 인한 이가 절대로 없다는 뜻이니, 배움의 길을 가는 이들은 깊이 경계해야 합니다.
(해설2) 중복 수록된 듯하지만, <양화陽貨>편 17장에도 이 장과 같은 말이 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야장公冶長>편에서는 "듣기 좋게 말을 꾸며서 하고 보기 좋게 얼굴빛을 꾸며서 지으며, 아첨하는 태도로 남을 공경하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워하였는데, 나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다_(巧言, 令色, 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5-25)고 했고, <위령공衛靈公>편에서는 또 "교묘히 꾸며대는 말은 사람의 덕성을 어지럽힌다_(巧言亂德"(15-27)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인덕을 길러야 합니다. 한데 인덕은 곧 진실함과 성실함에 근원’합니다. 그러므로 공자가 일찍이 "강직함과 과감함, 질박함, 어눌함은 모두 인에 가깝다_(剛毅木訥, 近仁"(자로 13-27)고 했듯이, 성성(性情)이 질박하지만 돈후(敦厚)하고, 말이 어눌하지만 진실한 사람이 바로 인도(仁道)에 근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한편으론 또 우리에게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안목과 식견을 기르라고 요구합니다.
<학이學而> 1-4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
교이불신호? 전불습호?"
증자가 말씀하였다. "나는 날마다(하루에) 세 가지로 나의 몸을 살피니,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충성스럽지(성심을 다하지) 못한가?' '붕우와 더불어 사귐에 신의를 다하지 않은 바가 있는가?' '전수(傳受)받은 것을 익히지 못할까 함이다.”
* 증자(曾子)는 孔子의 제자이니, 이름은 參’이고 자(字)는 자여(子輿)이다.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성실히 하는 것을 신(信)이라 이른다. 전(傳)은 스승에게 전수(傳受)받음을 말하고, 습(習은 자기 몸에 익숙히 함을 말한다. 증자가 이 세 가지로써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여, 이런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써서 자신을 다스림에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이와 같으셨으니, 학문하는 근본을 얻었다고 이를 만하다. 그리고 세 가지의 순서는 忠, 信으로써 傳習하는 근본을 삼아야 한다.
* 윤씨(尹氏, 尹焞)가 말하였다. “증자는 지킴이 요약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반드시 자신에게서 구하신 것이다.
* 사씨(謝氏, 謝良佐)가 말하였다. ‘여러 제자들 학문이 모두 聖人(孔子)에게서 나왔으나 그 뒤에 공자와 시간적으로 멀어질수록 더욱 그 참을 잃었는데, 유독 증자의 학문만은 오로지 그 內面에 마음을 썼다. 그러므로 전수(傳受)함에 병폐가 없었으니, 자사(子思)와 맹자(孟子)’에게서 관찰하면 이것을 알 수 있다. 애석하다! 그 아름다운 말씀과 좋은 행실이 세상에 다 전해지지 못함’이여! 그 다행히 남아있어 없어지지 않은 것을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설1) 공자가 "군자는 일의 탓이나 해법을 자신에게서 찾는다"_(君子求諸己(위령공衛靈公 15-21)고 했습니다. 그래서인가 전통적으로 유가(儒家)는 자성(自省)을 중시합니다. 그것은 곧 사람은 오직 자아 성찰을 통해서만 이성적으로 자아를 완성시켜갈 수 있다고 보기 떄문입니다. 《역경易經》<건괘蹇卦>에서도 "군자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덕을 닦는다_君子以反身修德"라고 했고, 《순자荀子》<권학勸學>편에서는 또 "군자는 널리 배우고 하루에 세 번 자신을 성찰하는 까닭에 지혜로움이 늘어 행실에 과오가 없어진다_(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則智明而行無過矣")라고 했습니다.
증자는 자아 성찰이 무엇보다 효과적인 수신(修身) 방법임을 잘 알고 성실히 실천했습니다. 명대(明代)의 왕양명(王陽明)이 "자하(子夏)가 성인을 독실히 믿었다면, 증자는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구하였다_(子夏篤信聖人, 曾子反求諸己"(전습록傳習錄)라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주자가 이른대로, 증자는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여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잘못이 없으면 더욱 힘씀으로써 자신을 다스림에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이와 같았으니, 배움의 근본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설2) 공자는 "주충신主忠信"(學而 1-8, 顔淵 12-10), 즉 언행을 함에는 충성과 신의를 위주로 할 것을 강조하며 '충忠'과 '신信'을 사회생활의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대개 '충'은 일事과 관련되고, '신'은 말言과 연관됩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일을 꾀하거나 나라를 위해 정사를 도모한다면, 마땅히 '충'을 최상의 준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벗과 교류하거나 이웃 나라와 외교를 한다면, 마땅히 '신'을 최고의 법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증자는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을 성실히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여력餘力'으로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 충실했으니, 진실로 공자 만년의 수제자로서 손색이 없다.
사람은 학문적, 도덕적으로 끊임없이 향상과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자기반성을 생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반성’이야말로 자율성과 자각’성을 극대화하면서 수신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은 자기반성을 통해 수신을 향상시키고 발전시키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아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에게 타율성보다는 자율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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