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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주부-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by TheEasyLife 2023. 5. 18.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尊德性齋銘曰 維皇上帝降此下民 何以予之 曰義與仁

維義與仁維帝之則 欽斯承斯猶懼弗克 我其監此祉栗厥心 有幽其室有赫其臨

존덕성재명왈 유황상제강차하민 하이여지 왈의여인

유의여인유제지즉 흠사승사유구불극 아기감차지윤궐심 유유기실유혁기림

 

존덕성재명에서 말했다상제께서 이 세상에 이 백성들을 내려주면서 무엇을

주셨는가? 오직 의와 인이다

오직 의와 인이 상제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니 공경하고 받들어 오직

제대로 하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내가 이것을 거울삼아 마음을 삼가고 두려워

하여 방에 홀로 있을 때 훤한 곳에 있는 듯하다.      <주자>

 

 

주자가 친척 동생인 정윤부程允夫를 위해서 지어준 글이다.  <심경주부>에는

주자의 말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내제 內弟인 정윤부가 도문학道問學이라고 재실의 이름을 지었다내가 존덕성

尊德性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하자, 윤부가 명을 청하기에 이것을 지었다.

도문학과 존덕성은 <중용><27>에 실려 있는데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군자가

따라야 하는 두가지 큰 줄기다.  <중용>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만일 지극한 덕을 지니지 못하면 지극한 도는 응집되지 않는다

따라서 군자는 존덕성과 도문학을 통해 실천해야 한다(고 군자 존덕성이도문

君子 尊德性而道問學).” 여기서는 덕을 이루지 못하면 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덕성이 우선한다주자도 재실의 이름을 도문학에서 존덕성으로 바꾸라고

했던 것에서 보면 존덕성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주자는 둘 중

어느 한 쪽에 편중하는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도문학은

도리와 이치를 공부하는 것으로, 경전을 공부하는 것이다존덕성은 말 그대로

덕성을 높이는 공부로 마음의 수양을 뜻한다. 학문과 수양, 공부와 실천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 나가야 하는가의 문제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중요하다.

다음의 글들은 모두 주자가 두 공부를 함께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들

이다.

“존덕성과 도문학,‘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 단속한다’는 것처럼 양 측면에서 공부해

어는 한 편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도리와 이치로 보는 것(도문학道問學)이 정밀하지 못하면 반드시 덕성을

높이는 공부(존덕성尊德性)를 해야 한다만약 덕성에 부족함이 있으면 강학에

힘써야 한다두 가지를 병행해 서로 일으켜 밝혀주면 광대하고 빛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 단속하라

 

주자는 이처럼 도문학과 존덕성, 두 공부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한쪽에 치중해 다른 한쪽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하지만 주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았다학문과 수양이 깊어지면서

도문학과 존덕성에 대한 생각도 점차 변화되었던 것이다.

주자는 중년의 시기에는 학문의 기초가 되는 도문학을 더 중시했다도문학을

소홀히 하면 학문과 수양이 공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계하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일은 이치를 파고드는 데 있다(궁리宮理).  상도가 바르지 않고 치가 밝지

않으면 아무리 지키려 해도 다만 헛될 뿐이다.

“모름지기 먼저 치지致知를 한 후에 함양涵養해야 한다.

여기서 궁리와 치지는 이치를 탐구하고 앎에 이르는 것으로 도문학을 말한다

함양은 덕의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존덕성이다주자는 중년의 시기에는 먼저

이치를 탐구한 다음 수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지만 노년이 되면서

주자의 관점이 바뀌게 된다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강설(도문학)에만 치중하고

함양(존덕성)은 폐기해 편협한 학문에 그치기 때문이다따라서 주자는 존덕성을

더 중시하게 되었고, 아래의 글들로 그 중요성을 가르쳤다.

“존덕성하지 않으면 나태하고 태만해진다배움이 무엇을 좇아 진보하겠는가?

“나는 배우는 사람들이 공허한 것을 담론하고 신묘한 것을 풀어내는 것을 걱정

해서 먼저 글의 뜻을 명확히 찾고자 했다결국에는 책자에 있는 글만을 굳게

지켜서 오히려 얻는 것은 자기에게 절실하지 않았다반드시 절실한 것을

알아서 음미하고 마음에 들여 힘써 실천해야 비로소 유익한 바가 있을 것이다.

이 글들은 주작 존덕성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것이다하지만 글의 맥락에서

보면 존덕성과 도문학, 두 가지를 모두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단지 한

가지를 가르치면 그것에만 집착해 다른 것의 중요성은 폐해 버리는 사람들의

편협함과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군자는 하루에 머무는 것을 꺼린다

 

앞의 인용문 첫머리에서는 인의가 모든 학문과 삶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인과 의는 하늘로부터 받은 세상의 법칙이니 오직 조심스럽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리고 인용문에는

생략했지만 이러한 하늘의 법칙을 지키지 못하고 천하고 어리석은 형태에 빠지고,

심지어 이를 달콤하게 여겨 하류에 머무는 것을 좋아해 점점 더 흉악한 악의

구덩이로 빠져드는 것을 꾸짖고 있다주자의 이말은 <논어><자장>에서 자공이

말한 “군자는 하류에 머무는 것을 싫어한다천하의 악이 모두 그것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군자오거하류 천하지악개귀언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를 빌려서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악이 모여든다’는 말은 역시 <논어>의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鄰)와 비교해서 볼수 있다.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뜻하는 의미는 같다덕이 있는 곳에 머물면 반드시 덕이 모여들어

더 큰 덕을 이루는 것처럼, 악이 있는 하류에 처하면 세상의 악이 모여들게 마련

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아는 사람들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쳐서는 (방심放心)안 된다

혼자 있을 때도 경건함을 잃지 않아야 하고, 어느 한 순간도, 아무리 다급한

순간에도 스스로를 지켜 변함이 없어야 한다바로 그때 지켜야 할 자세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옥을 다루듯이, 마치 가득 찬 물을 흘리지 않고 옮기는

것 같은 마음가짐’이라야 한다이것이 바로 학문과 수양을 평생토록 행하는

진정한 선비가 지켜야 할 도리다.

원문에 나오는 ‘짐은 무겁고 갈 길이 멀다’는 <논어><태백>에 실려 있는

증자의 말을 인용했다증자는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짐은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인을 자신의 맡은 바로 삼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죽은 후에야 그치니 어찌 멀지 않겠는가?

(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 인이위기임 불역중호 사이후이 불역원호

士不可以不弘毅任重而道. 仁以為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라고

하면서 치열한 선비의 길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주자는 진정한 선비의 길이란

이처럼 평생 지고 가야 하는 무거운 짐과 같으므로 결코 게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짐은 무겁고 길은 머니 부지런히, 그러나 쉬엄쉬엄 가라

 

두려워하고 삼가는 마음()과 참되고 진실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덕과

선한 본성을 함양해 나가는 존덕성,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물어서 올바른 길을

찾아 가는 도문학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는 명확한

해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주자도 평생을 두고 생각하고 고뇌했기에 증자의 글을

맨 마지막에 두어 결론으로 삼았을 것이다.

‘짐은 무겁고 길은 머니 게을리하지 마라.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키워주는 공부는 사라지고 성공과 출세, 치부를 위한

공부만 좇는 오늘날 더욱 새겨야 할 말이다끊임없이 이익만 추구하고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열중하면 마음은 공허해 질 수밖에 없다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하나를 얻으면 남이 가진 다른 하나가 갖고 싶고, 그것을 얻으면

또 다른 하나가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스스로

만족하기보다는 남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할 수는

없다그래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하늘이 준 선한 본성이다성인이 되고자 쉼

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던 옛 선비들의 차원은 무겁고 멀다단지 어렸을 때 배웠

지만 살아가면서 잃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찾는 것을 그 시작

점으로 삼으면 된다다산 정약용은 앞의 인용문에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덧붙

였다.

“우리의 본성을 살펴보면,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바로 본성

에서 생겨난다본성에 따르면 인에 머무를 수 있고 의에 말미암을 수 있으

므로 덕성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바로 이 덕성이 원래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높이고 받들어야 하며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마음의 권형權衡(저울)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하지만 실제로는 선하기는 어렵고 악하기는

쉽다만약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본성을 따라 선을 즐겁게

여기고 의를 키워 나가지 않으면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작은 선행을 하려고 해도

실행하기 어렵다.

우리는 다행히 하늘로부터 착한 본성을 선물 받았다‘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

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를 수 있다면 평안한 마음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나의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모든 것의 시작은 결국 나 자신의 마음에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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