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이 없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鷄鳴而起 孶孶爲善者 舜之徒也 鷄鳴而起 孶孶爲利者 蹠之徒也
欲知舜與蹠之分 無他 利與善之間也
계명이기 자자위선자 순지도야 계명이기 자자위리자 척지도야
욕지순여척지분 무타 이여선지간야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순임금의 무리요,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다.
순임금과 도척을 나누는 차이를 알고 싶은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선한 일을 행하는 차이일 뿐이다..
<맹자><진심장구 상>
도척은 중국의 전설적인 도둑의 우두머리다. 무려 9,000명의 부하를 이끌면서
제후를 공격하고 백성들을 약탈하는 등 지극히 잔혹했던 인물이었다.
<장자><잡편雜篇> ‘도척’에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공자에게 유하혜柳下惠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아우는 이름을 도척盜跖이라
했다. 도척은 9,0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면서 제후들의 영토를
침범하고 공격했다. 남의 집을 부수고 들어가 소와 말을 훔치고 부녀들을 약탈
했다. 이를 탐하느라 친척도 잊었으며, 부모 형제도 돌아보지 않았고, 조상들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서는 큰 나라일 것 같으면 성을
지키고, 작은 나라일 것 같으면 성안으로 도망쳐 난을 피했다. 그런 까닭에 많은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했다.”
심지어 도척은 공자가 교화시키기 위해 만나러 갔을 때 사람의 간을 회로 먹고
있을 정도였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커녕 기본적인 인륜도 저버릴 정도의
극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출처가 <장자>였던 만큼 그 일화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장자의 도교는 유교의 사상과 철학에 반하는 무위자연
無爲自然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책에는 인간적인 도리에 집착하는 유교와
그 시조인 공자를 조롱하고 비웃는 내용들이 실려 있다. 도척은 유교에서 가장
소중히 하는 사랑과 절제의 삶을 부정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는 데 충실했던
가장 반유교적이며 비도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순임금은 그에 반해 유교에서 가장 존경하며 추앙하는 인물이다. 요임금과
더불어 이제二帝로 불리며, 전설 속의 인물이기도 하지만 공자와 맹자는 물론
유교의 모든 사람들이 숭배했다. 특히 순임금은 황제가 되기 전 우순虞舜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홀아비였다. 아비는 어리석고, 어미는 간악하며, 이복동생은 오만
했지만 효성으로 화목을 유지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집안을 잘 다스렸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천하를 평안하게 이끌고자 하는
유교의 이상에 가장 일치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요임금에 의해 후계자로 발탁되었고, 우임금에게 보위를 물려줄 때까지
백성들을 잘 다스려 추앙을 받았다.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다스렸고,
지혜로운 인물을 기용해 백성들의 생업이 안정되도록 도왔고, 스스로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백성의 안녕만을 위해 노력하며 이상적인 정치를 구현
했던 것이다.
의로움은 일상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유교에서 도척은 인륜을 저버리는 가장 비도덕적인 인물이고, 순임금은 사랑으로
천하를 평안하게 했던 가장 도덕적인 인물이다. 맹자는 이 둘을 대비하며 그
차이를 간명하게 정리했다. 먼저 아침에 닭이 울 때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도척은 이익을 추구했고, 순임금은 선한 일을 추구했다. 평상시의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느냐가 천하의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나누는 차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차이는 결코 엄청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지극히 선한 사람이 되는 것도, 천하에 악한 사람이 되는 것도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할 때의 지극히 작은 차이에서부터 비롯된다.
선한 일을 추구하다가 약간의 빈틈을 보이고 어긋난다면 곧 악으로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도덕경>에는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서 필작어세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라는 성어가 실려있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모두 쉬운 일에서 비롯되고,
세상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지라도 초기에 잡았다면 쉽게 풀어나갈 수 있으며, 세상에서 크고
위대한 일도 그 시작은 미약하므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정자는 이렇게 말했다.
“순 임금과 도척의 구분은 단지 의로움과 이익의 차이에 달려 있다.
단지 ‘의로움과 이익의 차이(간間)’라고 말한 것은 서로 떨어짐이 멀지 않아서
차이가 털끝만큼 밖에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의로움과 이익의 차이는 공公과
사私다. 조금이라도 의로움에서 벗어나면 바로 이익을 말하는 것이다. 단지 저
계산하고 비교하는 것(계교計較)은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해
관계가 없다면 무엇하러 서로 견주어 보고 따지겠는가? 이해라는 것은 세상 사람
들의 인지상정이다. 사람은 모두 이익을 추구하고 해를 피할 줄 안다. 단지 성인
聖人이 이해를 논하지 않고, 의로움의 관점에서 해서는 안 되는지를 살핀다.”
정자는 이로움과 이익의 차이를 공과 사의 차이로 알기 쉽게 정의해준다.
이익을 위해 비교하고 계산하는 마음은 개인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마음이고,
의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바로 공익을 위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로움에서 벗어난다면 사익을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둘 사이에 어떤 중간
지대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고 말해준다. 단지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의로움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로서는 참 위로가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한계라고는 해도 언제나 내 이익, 내 욕심만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처음에는 작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욕심이 커져 나가면서
도척과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비록 순임금과 같은 성인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도척이 되지 않으려면 탐욕과 의로움을 민감하게 구분해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 한다. 특히 작은 일에서 유혹에 넘어가는 일이 거듭되면
의로움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점차 무뎌지고 만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 속담이 허튼 소리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평상시의 삶에서, 작은 일에서부터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을 습관처럼
삼아야 한다. 이처럼 의로움을 쌓아나가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얻을 수 있다고
맹자는 말했다.
뜻 없는 공부는 공부하는 이를 집어삼킨다
의로움을 지켜나가기 위해 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바로 공부다. 시험의 등락이나
출세만을 위한 지식 쌓기가 아니라 올바른 삶,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한 깊은
공부를 해야 한다.
<심경부주>에 실려 있는 상산 육구연象山 陸九淵의 말이다.
오늘날 선비 된 자들은 진실로 과거 시험장에서 이해득실이나 따지는 수준을
면치 못하므로, 그 재능은 관리들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눈치를 보는 데에만
치우쳐 있다. 이러한 것으로 군자와 소인을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 공부를
숭상해 높이 받드느라 빠져나올 줄 모르니 종일토록 성현의 글을 공부한답시고
노력해도 성현의 뜻과는 어긋나는 꼴이 된다.
이를 미루어볼 때 지위가 올라가면 오로지 관직의 높고 낮음과 녹봉의 많고
적음 만을 계산하니, 어찌 나라의 일과 백성의 고통에 몸과 마음을 다할 수
있겠으며, 일을 맡긴 군주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치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오늘날 우리의 풍조를 꾸짖는 듯하다.
오직 시험에 합격하는 데에만 뜻을 두고 공부하고, 승진과 출세만을 위해서만
책과 씨름하는 것은 진정한 공부라 할 수 없다. 깊이 성찰하는 기회 없이 그저
정보를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데에만 치중했던 사람은 설사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남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닌
지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모습으로 꾸미고 있지만,
자신의 이익과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왔다. 자기폐쇄적으로 공부를 하다가 도둑질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과
도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도척과 같은 도둑이 되고 만 것이다.
<장자>에는 도척과 부하가 도에 대해 대화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도척의 부하가 도둑질에도 도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척이 대답했다.
“도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방 안에 무엇이 있는가를 아는 것이 성聖이다.
몰래 들어갈 때 맨 앞에 서는 것이 용勇이다. 나올 때는 맨 뒤에 있는 것이 의義
고,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것이 지知다. 그리고 분배를 공평하게 하는 게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된 이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도를 아우르는 결과인 도둑질이 불의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에 알지 못하는 것이고, 흉내만 낼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
육산이 이어서 말하는 것에 해답이 있다.
“진실로 소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새겨 이익과 욕심을 위한 배움을
마음 아파해야 한다. 오로지 의로움을 쌓는 데 힘써서, 널리 배우고 자세히 질문
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구별하고 독실하게 행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삼아 과거를 보면 그 문장은 반드시 평소의 학문과 가슴속의
생각을 모두 말하게 되어 성인의 도리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또 이를 기반
으로 벼슬을 하게 되면 반드시 맡은 바 직책을 잘 수행하게 되고, 부지런히
일하고, 나라의 백성을 마음에 두고 일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군자라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왕 공부를 하기로 했다면
오직 나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득이 되는 큰 공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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