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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대로 생각하면 인간은 멈춰진다

by TheEasyLife 2023. 5. 17.

사는 대로 생각하면 인간은 멈춰진다

 

茫茫堪輿俯仰無垠 人於其間眇然有身 是身之微太倉稊米

參爲三才曰惟心爾 往古來今熟無此心 心爲形役乃獸乃禽

망망감여부앙무은 인어기간묘연유신 시신지미태창제미

참위삼재왈유심이 왕고래금숙무차심 심위형역내수내

 

아득하고 아득한 천지여, 굽어보고 우러러 보아도 끝이 없다. 사람은 그 사이에

지극히 미미한 몸뚱이 하나 갖고 있으니 이 몸의 미미함은 마치 큰 창고에 한 톨

낱알에 불과하다

그래도 하늘과 땅과 함께 삼재의 하나가 되었음은 오직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누군들 이 마음이 없었겠냐마는 마음이 물질의 부림을 당하니

짐승이 되는 것이다.  <심잠心箴>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는 천지의 크기에 비해 사람 하나는 지극히 작은 존재다

비록 오늘날 과학이 밝혀낸 것과 같은 끝없는 우주, 아니 아직도 채 밝혀내지

못한 우주의 크기를 그 옛날의 철학자들 또한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고 해도

이미 충분히 느낄 수는 있었다하늘은 신령한 것으로 제쳐 놓았다고 해도, 태산

에만 올라서 봐도 자기 존재의 미미함을 절감했을 것이다이처럼 자기 존재의

작음을 인식하고 깨우친 사람들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할

수 있었다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오직 자기의 삶을 영위하는 데

집중할 뿐 다른 세상은 안중에 없었다오직 나라의 임금을 하늘로 여기고, 그가

먹고 입고 사는 것을 보장해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살았다

장자가 우화로 말했던 것처럼 망망대해의 크기를 듣고 놀라 기절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정저지와 井底之蛙)’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앞의 인용문에서 범준范俊이 말했던 태창제미太倉천지의 크기에 비해 지극히

미미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나라의 곡식을 모아두는 엄청나게 큰 창고 그 안에

끝도 없이 쌓여 있는 쌀들 중에 한 톨에 불과한 존재라니 얼마나 미미한가!

더구나 그 쌀 한 톨도 제대로 된 쌀이 아니라 돌피쌀,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한

가라지와 같은 존재라고 하니 말할 것도 없다. 인간 존재의 미미함은 이외에도

많은 비유가 있다. 넓고 큰 바다 가운데 한알의 좁쌀을 뜻하는 ‘창해일속滄海一粟,

아홉 마리 소들 가운데 박힌 털 하나라는 구우일모九牛一毛’ 등이 있지만 이 역시

광대한 우주 속의 인간을 뜻하기에는 상상력이 빈곤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유하니까 인간이다

 

하지만 이처럼 미미한 존재인 인간은 삼재三才 가운데 하나다하늘과 땅과 함께

사람이 천하게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사람이 삼재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삼재의 재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재능이 아니라 기본, 근본의 의미를 가진다즉 천하를 이루는 근본인

것이다맨 위의 획은 하늘, 가운데 획은 사람, 그리고 마지막 획은 땅을 뜻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때문에 인간이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현자들이 말하고 있다특히 맹자는 사람의 마음에 관해 깊은

연구와 통찰로 본성을 이루는 네 가지 마음을 설파했다측은(惻隱 남의 불행을

슬피 여김) 수오(羞惡 옳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김) 사양(辭讓 양보하고 예를 지킴),

시비(是非 옳고 그름을 가림)의 네 가지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선한 본성이고,

이러한 본성이 있기에 사람은 귀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동양철학에서 마음 자체를 논했다면 서양의 철학은 마음을 통한 작용, 즉 생각을

할 수 있기에 사람은 소중한 존재라고 했다‘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유명한 명언이 담고 있는 의미다이 말을 남긴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고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 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다.

 

인간은 한낱 갈대와 같이 미약한 존재지만 사유를 하기 때문에 존엄성을 지닌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미약함을 알게 되고, 스스로 올바른 도덕성을

지켜나간다이러한 주장은 하늘로부터 선한 본성을 받았기에 인간은 존엄하고,

또 이러한 마음을 지켜나감으로써 그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동양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하늘로부터 선한 마음을 타고났다누구나 빠짐없이 이러한 마음을 받았

기에 하늘은 공평한 것이다하지만 어떤 사람은 선한 마음을 간직해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나간다어떤 사람은 살아가며 세속적인 욕심에 휘둘리면서 선한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범준은 그렇게 인간이 스스로를 잃게 되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고 질타한다.

하지만 자신의 선한 본성을 잘 지켜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한낱

작고 미미한 마음을 수많은 물욕이 틈타고 있기 때문이다마음을 바르게

지키지 못하면 이목구비와 사지가 물욕의 유혹을 받고 결국 마음을 병들게 한다.

<심경경의心經經義>에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마음이 보존되면 이목구비와 사지 등 모든 몸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마음에 약간의 틈을 보이면 곧 그것을 타고 들어가 마음을 병들게 한다

이는 마치 여색을 멀리하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면 눈의 욕심이

그것을 틈타고, 음란한 음악을 쫓으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면 귀의

욕심이 그것을 틈타는 것과 같다.

따라서 마음 공부에 조금도 해이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하지만 조금도

마음의 틈을 보이지 않고 육신을 단속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수신을 위해

일생을 매진하던 그 당시 선비들조차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범준은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물욕과 이익의 추구에 두고 있는 오늘날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물론 그 당시처럼 이익의 추구가 죄악시되거나 마음의

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적절한 욕망의 추구를 오히려 권장하기도 하는 시대다.

욕망에 충실한 것, 그것이 오히려 마음의 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하지만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더라도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옛날과 지금이 다를 바 없다.

바로 사랑과 배려의 인, 정의의 의, 질서를 위해 지켜야 할 예, 인격이 완성과

바른 판단을 위해 필요한 지다물론 오늘날에는 이러한 기준을 꼭 지켜야

한다고 강제되지는 않는다그 선택은 개개인에게 달려 있고, 법에서 제한하는

것만 넘지 않는다면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이 달라지는 순간들이 있다비록 법이 규제하는 범위 안에서

라고 해도 이익과 욕망을 취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과 스스로의

양심에 따른 삶은 그 가치와 품격이 다르다.

 

살얼음을 걷듯

조심스러운 성인의 길

 

범준은 이 글의 마지막에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

하고 있다.

“군자가 정성을 보존해 능히 근심하고 삼간다면 내 몸이 평안하고 안정 되어서

온 몸이 마음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몇 번을 거듭해서 말하지만 성 <중용>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다

정성 혹은 진실 등으로 해석되는데 여기서는 정성으로 풀이했다자연은 특별히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진다인위적인 노력을 가하지 않아도

조화를 이룬다그것이 바로 성이며 하늘의 도리다하늘의 도리인 성을 따르는

것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도리다반드시 선을 택해서 그것을 굳게

지키는 것이 성을 따르는 자, 바로 성인의 길이다그리고 범준은 그것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 길이 바로 염과 경이라고 말해준다.

여기서 염은 생각이다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했던 견리사의見利思義, 견득사의見得思義

이를 잘 표현한 성어다만약 이익 앞에서 올바른 이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익과 정욕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또한 생각은 공부와 수양을 완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절차다공부란 단순히 지식만을 취해서는 진정한 내

것이 될 수 없다내 삶과 일에 쓸 수 있는 지식이 되려면 반드시 생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내 몸에 체득해야 한다.

다음으로 경은 삼감이다. 해야 할 일은 경건하게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사람들은 흔히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그때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 옳지 않은

일을 먼저 생각해서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단지 목적을 이루고 목표를 달성

하는 데에만 모든 것을 건다면 그 과정과 절차의 원칙과 정당성을 잃게 된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먼저 생각을 통해 올바른 이치를 알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삼가함으로써 마음을

굳게 지키고 일을 이루는 데 성실을 다해야 한다그래야 올바른 성공, 정의로운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못지않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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